學而時習 | 학습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時 때 시
習 익힐 습
之 갈지
不 아닐 불, 아닐 부
亦 또 역, 겨드랑이 액
說 기뻐할 열, 말씀 설, 달랠 세, 벗을 탈
乎 어조사 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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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는 많은 기능이 있지만 주로 쓰이는 것이 서술어와 서술어 사이에 쓰여 순접(and:그리고) 과 역접(but:그러나)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서술어는 學과 習이고 그 중간에 而를 넣어 순접 기능을 하고 있다
時는 부사로 쓰입니다. 왜냐하면 동사 앞에는 부사, 명사 정도만 올 수 있기에 여기서는 명사가 아니니 당연히 부사로 習을 수식해주는 역할을 한다. '때때'로 라고 해석을 한다
習之에서 習은 동사로 익히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타동사의 경우 반드시 뒤에 동사의 목적어를 넣어야 하는 것이 한문의 법칙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대명사 之를 넣은 것입니다. 之는 영어의 가목적어라 여기면 될 것이다.
不亦A乎 는 외워두어야 할 숙어로 자주 등장을 합니다. 해석은 '또한 A 하지 아니한가 이다
< 종합 >
배운다(學) 그리고(而) 그것을(之) 익히면(習) 또한(亦) 즐겁지(說) 아니(不) 한가(乎)→배우고(學而) 그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해설> - 도올
공자에게 있어서의 학(學)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공자의 일생을 통해 추구된 학(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이 아닌, "禮(예)·樂(악)·射(사)·御(어)·書(서)·數(수)"로 통칭되는 육예(六藝)를 말한다.
그것은 문무의 구분이 전혀 없는 매우 실용적인 개념이다.
"習(습)"은 學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習"(익힌다)이라는 것은, 學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때"(時)를 갖는다는 것이다.
문무가 통합된 六藝(육예)를 익히는 과정이란 반드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書(서)·數(수)를 할 수는 있으나 射(사)·御(어)를 할 수는 없다.
장년이 되어도 여름의 맑은 날씨에 말달리고 활을 쏠 수는 있으나 추운 겨울날씨에 빙판에서 말달리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배움의 익힘이란 내 몸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익힘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요(身中時), 또 계절의 형태에 따라(年中時), 또 하루 중에서 아침,점심,저녁에 따라(日中時) 익힘이 달라질 것이다. 때를 잘못 타서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평생을 통해 때를 맞추어 끊임없이 정진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뜻이다.
"不亦說乎(불역열호)"라 한 구문에서 "亦"의 뜻도, 딴 즐거움도 있는데 이것 "또한" 즐겁다는 식으로 새기면 안된다. 여기서 "亦"이란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남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강조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亦"이 아니라 기쁨의 절대적 경지를 구가하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구문의 "不亦樂乎"의 "樂"과 첫 구문의 "說"에 있어서 "說(열)=悅"은 나의 실존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뜻이요, "樂"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한다. 說은 卽自的(즉자적)이요, 樂은 對自的(대자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朋"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朋黨(붕당)"이요, "同門(동문)"이요, "同志(동지)"다.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학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遠方(원방)"이란 먼 나라 사람들까지 찾아온다는 뜻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는 國을 벗어난 鄙野(비야)의 세계, 즉 편벽한 庶人(서인)의 세계까지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즉 자로(子路)와 같은 卞(변)의 야인(野人)들도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공자의 "有敎無類(유교무류)"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을 위하여 배움을 같이 하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것, 공자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큰 즐거움 이었을 것이다.
"人不知而不溫"에서 "人"은 "남"(타인)의 뜻이다. 옛말에 人은 己(자기)와 대비되는 말이다. "不知"는 단순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의 인생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명군(名君)을 만나기 위하여 주유한 삶이었다. 결국 "人不知"란 뜻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정치적으로 등용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素人(소인)으로서 마감한다는 뜻이다. "溫"이란 단순히 "부끄러움"의 뜻이 아니라,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우리말로 "한"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평생을 통해 나의 이상의 현세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다! 왜냐? 바로 君子(군자)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참고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